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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월암

    영월암

    관광지
    영월암
    마을명
    경기 이천 도니울명품쌀마을
    유형
    산/계곡/폭포/동굴

    소개

    영월암

    1988년 7월 28일 전통사찰 제50호로 지정된 영월암은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 (義湘大師.625-702)가 창건하여 북악사(北岳寺)라 하고 산이름도 북악(北岳)이라 하였다고 하나 이를 뒤받침할 만한 실증적 자료가 없어서 사실여부를 확인하기 어렵다. 그런데 영월암에는 보물 제822호로 지정된 (영월암 마애마애여래입상)은 고려 중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또 이천시 향토유적 제3호로 지정된 석조광배 및 연화좌대는 통일신라말에서 고려 초기작으로 추정되고 있다.이로써 볼 때 영월암은 신라말에서 고려초기작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렇듯 고려시대의 뛰어난 불교 유물이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1531년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영월암은 말할 것도 없고 이 산에 있는 어떤 사찰에 관해서도 언급하고 있지 않다.

    영월암

    이후 조선영조의 명으로 <동국여지승람>을 감수한바 있는 신경준(申景濬 1717∼1781)이 편찬한 <가람고(伽藍考)>에 북악사가 보이고 있다.거의 비슷한 때인 1799년(정조23)에 정조의 명에 따라 편찬된 범우고(梵宇攷)와 1760년(영조36)에 편찬된 전국읍지인 여지도서 (與地圖書) 에도 역시 북악사라고 이름이 보인다. 이상의 사실로 볼 때 영월암(북악사)은 고려 이후 조선 중기까지 그 사세가 알려지지 않다가 조선 후기에 이르러 그 모습을 역사속에 다시 드러내고 있다. 774년(영조50)에 영월대사(映月大寺) 낭규(朗奎)가 북악사를 중창하고 자신의 법호를 따 영월암이라 절 이름을 고쳐 불렀다고 한다.

    영월암

    1986년4월14일 향토유적 제3호로 지정된 영월암 석조광배 및 연화좌대는 이천시 관고동 438에 위치하고 있다. 映月庵(영월암)창건 당시에 조성된 것으로 알려진 石造光背(석조광배)와 蓮華座臺(연화좌대)로서, 그 중심에 安置(안치)했던 불상은 없어진 채 倒壞(도괴)되어 있던 것을 大雄殿(대웅전)앞에 복원해 놓았다. 중앙의 불상은 1980년 새로 조성해 안치한 것이다. 화강암 1석으로 조성한 광배는 끝이 뾰족한 丹形擧身光(단형거신광)의 형태로 다듬어져 있다. 표면에는 2條로 된 降起線(강기선)으로 頭光(두광)과 身光(신광)을 나타냈고, 두광 복판에 圓을 중심으로 單葉8辯(단엽8변)의 연잎을 둘렀으며 주위에는 火焰文(화염문)과 唐草文(당초문)이 있다.

    두광의 상부와 신광 좌우로 3尊의 化佛坐象(화불좌상)이 있고 복판에 흠이 나있어 불상 뒤에 부착 했던 흔적이 있다. 전체높이 156㎝, 폭 118㎝, 두께 45㎝의 규모이다. 蓮華座臺(연화좌대)는 정방형의 地臺石(지대석) 위에 8각의 下臺石(하대석)과 역시 8각의 眠像(면상) 仰蓮座(앙연좌) 蓮座(연좌)의 4부분을 1석씩으로 조성 연결해 놓았다. 섬세하고 유려한 彫刻(조각) 솜씨는 뛰어나며, 특히 佛身(불신)을 떠받들고 있는 仰連座(앙연좌)에 새겨진 연잎들을 방금 피어오른듯 生動感(생동감)에 넘쳐 있다. 전체높이는 107㎝이다. 전체적인 조화와 섬세하고, 세련된 조각 솜씨로 미루어 佛敎美術(불교미술)의 全盛基였던 統一新羅 - 高麗 初期의 작품으로 추정된다.